사교육비 매해 경신속 학벌주의 여전
토론·협업 등 교육 성취 역량 키워야
작년 소득 상·하위 10% 격차 2억 돌파
부의 불평등 심화… '개천용' 사라져
정부 노동시장 지원 격차 줄여나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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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찾기 입시 교육 한계…성취 역량 중요
"교육이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교육을 돌아보면 이 경구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산업화·민주화 시대를 거치며 교육은 사회 도약의 원동력이었지만, 오늘날은 사회 회복력을 갉아먹는 구조적 문제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핵심은 입시 중심의 획일적 교육 체제다. 학생들은 토론과 비판적 사고의 공간을 잃고, 학부모들은 '좋은 대학=좋은 직업'이라는 낡은 공식을 강박처럼 좇는다. 최근 사회 전반을 휩쓸고 있는 의대 열풍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결국 교육은 불평등의 사다리로 변했고, 학벌주의는 여전히 사회 전반을 옥죄고 있다.
이 같은 구조는 학생과 학부모를 끝없는 경쟁으로 몰아넣으며 사회 전반의 신뢰와 협력 기반을 허물고 있다. 사교육비는 매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교실은 시험 대비에 매몰돼 인성·윤리·역사 같은 기본 교육이 뒷전으로 밀린다. 공동체 의식과 시민적 책임을 배우지 못한 세대가 자라날수록 사회 회복력은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불확실성과 복잡성이 증대하는 21세기, '정답 찾기'식 입시 교육만으로는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커진다.
세계 교육 선진국들은 이미 방향을 바꿨다. 미국과 유럽의 다수 대학은 입학 시점의 성적보다 졸업할 때 학생이 성취한 역량을 더 중시한다. 우리 교육도 수업의 중심을 문제 해결·토론·프로젝트로 옮겨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고 협력해 해법을 설계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특히 인성·윤리·역사·철학 등 기본 교육을 복원해 시민적 책임과 공공성, 공감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인공지능(AI)이 보편화될수록 인간만의 가치가 경쟁력이다. 송해덕 중앙대 교수는 "AI의 도입에 따라 협력과 소통, 공감, 윤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갈등을 조율하는 스킬이 중요해지고 있다"며 "디지털 기술 활용 역량은 물론 사회정서적 상호작용 역량을 갖춘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지금, 교육의 회복력은 곧 대한민국의 회복력이다. 입시에서 자유로운 학교, 토론과 협업이 살아 있는 교실, 인간적 가치를 북돋는 기본 교육이야말로 다음 80년을 떠받칠 토대다. 교육이 시대의 변화에 응답할 때만이 한국 사회는 불확실성과 격변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번영을 이어갈 수 있다.
◇소득·부 불평등 심화…노동시장 차별 개선 시급
경제적 양극화는 해마다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가구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의 연평균 수입 차이는 2억원을 넘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격차는 2021년 1억7253만원, 2022년 1억8166만원, 2023년 1억8793만원, 2024년 2억32만원으로 꾸준히 확대됐다. 이는 수도권 외곽지역과 일부 지방에선 아파트를 매매할 수 있는 수준이다. 부동산R114가 조사한 결과, 지난해 6월 수도권 외 지역 아파트 평균 가격은 3억5000만원으로 집계됐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격차는 더욱 벌어져 부의 불평등 문제로 치닫게 된다. 이미 자산 불평등의 지표인 순자산 지니계수는 지난해 0.612로 역대 최악이었다. 수치는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한 반면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한 것을 의미한다. 이른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환경이 되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계층 간 갈등으로 사회 갈등으로 번지게 된다. 총체적 난국이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을 개선하려면 사회를 전반적으로 손봐야 한다. 가장 시급한 건 노동시장에서의 차별적 관행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여성과 남성,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에 따른 임금 차이를 해결해야 한다. 현재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근로기준법에 동일 노동·동일 임금의 원칙을 명시하려 하고 있다. 상징성을 위한 구호도 좋지만 실현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외국인과 장애인도 포용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이미 200만명을 넘는 외국인은 중요한 구성원인데, 이들을 배제한다면 양극화 해소는 요원하다. 사회가 다양성을 존중하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복지망을 강화해야 한다.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 없이는 양극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김태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정책연구실장은 "정부가 노동시장에서 직간접적인 지원으로 격차를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며 "이와 함께 사회 안전망 정책이 잘 구축돼야만 양극화 문제를 좁힐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