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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행안부 산하 중수청 설치안’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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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9. 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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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원 법무법인 바른 공정거래수사 대응팀장
지금 국회에서 논의되는 '검수완박 시즌2' 법안, 즉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 법안'은 대한민국 형사사법 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드는 거대한 실험입니다. 검찰의 힘을 빼서 권력 남용을 막겠다는 취지에는 많은 국민이 공감하실 겁니다. 그러나 좋은 목표가 잘못된 설계를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신설될 중수청을 행정안전부(행안부) 산하에 둔다는 구상은 개혁의 본질을 훼손하고, 우리 사회에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잘못된 구상입니다.
이번 법안의 가장 큰 문제는 국가의 핵심 수사 권력을 한 부처에 몰아준다는 점입니다. 이미 10만 경찰을 지휘하는 행안부 장관에게 부패, 경제, 공직자 범죄 등 가장 민감한 사건을 다룰 중수청의 지휘권까지 부여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검찰의 힘을 빼, 그 힘을 행안부로 고스란히 옮겨 '공룡 부처'를 만들겠다는 구상입니다.
권력분립은 단지 정부와 국회, 법원을 나누는 것만이 아닙니다. 국민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는 강제력은 정부 안에서도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그러나 양대 수사기관이 한 장관의 손에 들어가면 행정부 내에서의 균형과 견제는 무력화됩니다. 법률 전문성보다 행정 효율과 치안을 우선하는 행안부의 특성상, 수사가 사법적 정의가 아닌 정치적·행정적 판단에 따라 좌우될 위험성은 오히려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검찰개혁의 대의를 스스로 허무는 일입니다.
제가 공정거래조사부장으로 재직하며 다뤘던 많은 공정거래 사건들, 그리고 최근 검찰에서 성과를 낸 수조 원대 아파트 입찰 담합이나 국제 카르텔 사건 등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합니다. 복잡한 회계 장부를 분석하고, 암호화된 디지털 증거를 찾아내며, 정교하게 설계된 범죄 구조를 파헤치기 위해서는 수사와 기소, 재판 경험이 유기적으로 축적된 전문가가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현재 논의되고 있는 법안은 수사와 기소를 완전히 분리해 , 중수청 수사관은 법정 경험을, 공소청 검사는 수사 경험을 전혀 쌓을 수 없는 구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일부 검사들을 중수청에 잠시 파견해 노하우를 전수하면 된다는 주장은 조직의 전문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르는 순진한 발상입니다. 전문성이란 조리법처럼 간단히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조직 전체가 경험을 공유하며 쌓아 올리는 '생태계'와 같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시스템은 차세대 경제범죄 전문가의 성장을 원천적으로 막아 장기적으로 국가의 수사 역량을 영구히 퇴보시킬 것입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범죄로 고통받는 국민과 선량한 기업들에 돌아갈 것입니다.
수사는 본질적으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하는 '준사법적' 행위입니다. 이러한 기능을 일반 행정을 담당하는 행안부에 두는 것은 정부 조직의 기본 원리에도 맞지 않습니다. 또한 수사와 기소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수사기관과 기소기관이 다른 부처에 소속되어 서로 탓만 하는 구조는 결국 형사사법 시스템 전체의 비효율과 불신만 키울 뿐입니다.
미국의 FBI가 법무부 산하에서 높은 독립성을 유지하며 운영되는 것처럼, 우리도 법무부 산하에 독립적인 중수청을 설치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재고해야 합니다. 중수청장의 임기를 7~10년 등으로 보장하고 , 중립적인 위원회가 추천해 국회 청문회를 거쳐 임명하는 등, 얼마든지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할 장치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개혁은 기존 시스템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과 상식에 맞게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어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국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머리를 맞대길 촉구합니다.

고진원 법무법인 바른 공정거래수사 대응팀장·전(前)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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