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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으로 드러내는 권력과 욕망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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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찬 선임 기자

승인 : 2025. 09. 19. 06:00

연극 '감찰관' 프리뷰
니콜라이 고골의 고전이 오늘의 한국 무대에 되살아나 권력 구조와 인간의 탐욕을 비춘다
임도완 연출 “부조리는 코믹하다”… 웃음 끝에서 마주하는 불편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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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감찰관' 무대를 준비하는 배우들의 연습 현장 / 사진 사다리움직임연구소
고전은 시대를 초월해 되풀이되는 인간의 욕망을 드러낸다. 러시아 극작가 니콜라이 고골의 희곡 '감찰관'이 대표적이다. 19세기 제정 러시아의 부패한 지방 관료들을 풍자한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권력 앞에 비굴해지는 인간의 본성, 허위를 덧칠해도 결국 드러나는 욕망의 민낯, 그리고 웃음 속에 숨어 있는 불편한 진실이다.

극단 사다리움직임연구소가 오는 9월 19일부터 21일까지 구로아트밸리예술극장에서 선보이는 신작 '감찰관'은 바로 이 고전을 한국 무대 위로 다시 불러내 웃음과 풍자를 통해 시대를 향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번 공연은 구로문화재단과 사다리움직임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주관하고 서울시·서울문화재단·구로구가 후원하는 2025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지난 2년간 축적해온 창작 레퍼토리를 마무리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단순한 한 편의 공연을 넘어 사업의 성과를 결산하고 지역 주민과 예술적 성취를 나누는 의미가 크다.

어느 시골 마을에 감찰관이 내려온다는 소문이 퍼지자 마을의 관리들은 자신들의 잘못이 들통날까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들은 우연히 묵고 있던 방랑자 홀레스타코프를 감찰관으로 착각하고 뇌물과 아첨을 쏟아내며 환심을 사려 한다. 그러나 홀레스타코프는 사실 감찰관이 아니라 그저 세상을 떠돌던 나그네다. 그는 곧 상황을 눈치채고 진짜 감찰관인 양 행세하며 오히려 그들을 농락한다. 작품 속 대사인 "제 낯짝 비뚤어진 줄 모르고 거울만 탓한다", "없는 것도 있다고 만드는 세상입니다"는 부조리를 꼬집으면서도 오늘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고골의 희곡이 19세기를 풍자했듯 지금 이 무대는 21세기의 우리를 겨냥한다.

연출가 임도완은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는 사람은 눈과 귀가 먹은 사람이며 그 말로가 비참할 뿐이다"라는 메시지를 거듭 강조했다. 그는 "권력에 눈먼 자들은 절대로 과거에서 배우지 못한다. 왜냐하면 욕심이 그 사람을 지배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그런 사람들이 난관에서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한데 자신의 지위와 연줄 그리고 상납하는 어떤 것이다. 이런 것으로 모두 해결됐고 모두 자기와 같은 사람만 있다고 믿기 때문에 앞으로도 통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발언은 단순한 연출 노트가 아니다. 한국 사회 곳곳에서 반복되는 부패의 구조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익숙한 풍경을 비추는 일종의 시대 진단이다. 임 연출은 "이런 일이 지금도 일어난다는 사실을 보면서 또다시 생각하게 된다. 인간은 여전히 부조리한 존재다. 그래서 부조리는 코믹이다"라고 말했다. 즉 코미디는 단순한 웃음이 아니라 인간의 허위와 권력의 탐욕이 만들어내는 부조리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것이다.

이 연출 의도는 고골의 고전이 오늘 무대에서 다시 살아나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감찰관'의 웃음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다. 웃음이 끝나고 난 뒤 우리는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의 탐욕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관객은 웃으면서도 불편함을 느끼고 결국 자신이 속한 시대와 사회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1998년 창단된 사다리움직임연구소는 한국적 움직임과 빛, 소리의 융합을 통해 독창적인 무대언어를 창조해온 극단이다. 임도완의 움직임 메소드를 기반으로 신체 중심의 표현 방식을 발전시켜왔으며 '보이첵', '하녀들', '한여름밤의 꿈', '카프카의 소송' 등 굵직한 고전을 통해 국내외 무대에서 인정받았다.

이들의 무대는 언제나 신체적 움직임과 오브제, 색과 빛, 그리고 음악의 조화를 특징으로 한다. 인간 본성에 내재된 욕망을 자연의 원소, 동물, 물질의 역동성과 연결시키는 방식은 사다리움직임연구소만의 독창적 시도다.

최근에는 미디어아트와 과학적 장르를 접목하며 미래지향적 무대를 지향하는 등 예술적 실험의 영역을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다. 이번 '감찰관'은 그러한 맥락 위에서 탄생했다. 권력 풍자의 고전을 토대로 하되 사다리움직임연구소 특유의 움직임과 신체적 표현이 더해져 무대 위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이번 공연의 또 다른 특징은 환경적 책임이다. 극단은 이번 제작 과정에서 친환경적인 실천을 강조했다. 홍보물은 지속가능한 친환경 용지를 사용했고 일회용품을 자제했으며 배우와 스태프 모두가 친환경 실천 서약에 참여했다. 무대와 조명, 의상 제작 과정에서도 재활용을 적극 도입하며 자원 낭비를 최소화했다. 예술적 성취와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고민한 이번 시도는 무대가 사회적 실천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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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감찰관' 무대를 준비하는 배우들의 연습 현장 / 사진 사다리움직임연구소
무대에는 개성 있는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작품의 핵심은 방랑객이자 가짜 감찰관으로 오해받는 홀레스타코프 역의 이상민이다. 허세와 과장을 무기로 마을 사람들을 농락하는 그의 연기는 이번 작품의 희극적 긴장을 이끌어갈 중심축이다.

권력의 상징인 시장 역에는 김한빈이 캐스팅돼 체제의 부패와 위선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며 마을을 움직이는 권력 구조의 민낯을 드러낸다. 시장의 아내 안나 역의 이지선과 딸 마리야 역의 한하연은 가정 내 사적인 욕망이 사회적 권력과 교차하는 지점을 드러내며 극의 또 다른 긴장을 형성한다.

경찰서장 역의 최이영과 교육감 역의 강정탁은 공권력과 제도를 대표하는 인물들로서 부패가 제도 전반에 스며든 현실을 희극적으로 형상화한다. 또한 우편국장 역의 권효은, 여관 하인 역의 조성경, 미슈카 역의 박해린, 오시프 역의 이병희, 판사 역의 이승한 등이 합류해 마을이라는 집단적 풍경을 세밀하게 완성한다.

창작진도 든든하다. 연출은 임도완, 조명은 이상근, 음악은 한지훈, 의상은 이주희, 음향은 안창용이 맡았으며 무대감독 양주현이 현장을 책임진다. 기획은 박재연·윤진희·유지은, 사진은 유희정, 그래픽은 박지수가 담당해 공연의 완성도를 높인다.

이번 공연은 단순히 한 편의 신작을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다. 서울문화재단의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의 마지막 작품으로 구로문화재단과 사다리움직임연구소가 지난 2년간 협력해온 성과를 집약해 선보인다. 이 사업은 다양한 창작 레퍼토리를 발굴하고 지역 주민에게 다채로운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구로문화재단은 구로아트밸리예술극장을 중심으로 수준 높은 공연을 기획해왔다. 지역 기반 극장이 단순한 상연 공간을 넘어 창작과 실험의 거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번 '감찰관'은 그러한 사업의 결산이자 앞으로 지역문화의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연극 '감찰관'은 관객에게 시원한 웃음을 주지만 그 웃음은 곧 불편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권력에 눈먼 인간의 모습은 시대와 사회를 불문하고 반복되고 그 반복은 오늘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확인된다. 임도완 연출이 말했듯 "부조리는 코믹하다." 그러나 그 코미디는 결코 가볍지 않다. 웃음은 순간적이지만 그 웃음 뒤에 남는 성찰은 오래 남는다.

공연은 오는 9월 19일부터 21일까지 구로아트밸리예술극장에서 열린다. 권력과 욕망을 웃음으로 해부하는 이번 무대는 고전이 지닌 풍자 정신과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움직임 언어가 결합한 성과물이다. 고골이 그려낸 부조리의 풍경이 오늘날 한국 무대에서 어떻게 재탄생하는지 관객은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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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찬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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