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획일적인 형벌 벗고 교화 시도
맞춤 성교육으로 재범방지·복귀 유도
실험 제도 전국 20여개 청 확산에도
강사 부족·예산 미비 등 안착 과제로
|
아동 성범죄 사건의 경우 법조문에 따라 엄벌에 처하지만, 피의자가 '발달장애'를 갖고 있다는 특이점이 그를 고민의 늪으로 밀어넣었다. 더욱이 사건 기록과 별도로 발달장애인지원센터를 통해 확인한 A군의 삶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상처로 얼룩져 있었다.
A군의 아버지는 사고로 신체장애를 입어 기초생활수급에 의존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A군이 14세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가까운 친척도, 친구도 없이 장애인 거주시설에 머물던 A군은 성교육이나 사회화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었다. 성적 충동을 조절하거나 타인의 기분과 상황을 인식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다.
권 검사는 단순 처벌만으로는 정의의 실현도 교화의 성과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집행유예는 판결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A군에게 무의미했고, 벌금형은 보호자의 대납으로 마무리돼 반성의 기회를 없앴다. 단기 자유형의 경우 A군이 교도소 내 다른 수감자로부터 신체적·성적 가해를 입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더 큰 문제는 교육 체계의 공백이었다. 발달장애인의 성범죄는 대부분 성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되지만, 당시 보호관찰소나 성폭력상담소에선 피해자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만 존재했다. 가해자를 위한 프로그램도 집합교육뿐이라 1대1 맞춤형 교육이 필요한 발달장애인은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권 검사는 유사 사건을 처리하면서 '처벌만으로는 재범을 막을 수 없다'는 한계를 거듭 확인했다. 결국 권 검사는 A군 사건에 대해 '교육조건부 기소유예'라는 처분을 내렸고, 이날을 시작으로 발달장애 피의자 처벌에 대한 새로운 물줄기가 흐르게 됐다.
A군 사건은 우리 형사사법 체계가 획일적인 형벌주의의 한계를 마주한 순간이자, '교육조건부 기소유예 제도'의 의미를 확인하게 된 계기가 됐다. 발달장애인을 단순히 처벌하는 데 그치지 않고, 특성에 맞춘 교육을 통해 재범을 막고 사회 복귀를 유도하겠다는 시도였다. 이 시도는 대전에서 서울, 부산, 광주 등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그러나 처음의 상황과 달리 현재는 전문 강사 부족, 예산 미비, 사후관리 부재라는 구조적 문제에 가로막혀 미완의 제도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회복 향한 검찰의 실험
'발달장애인 교육조건부 기소유예' 제도는 올해로 8년째를 맞았다. 발달장애인 범죄자는 '가해자'이면서도 동시에 '사회적 약자'라는 이중적 지위에 놓인다. 성적 충동 조절 능력이나 사회규범 인식이 취약한 경우가 많지만, 형사 절차에서는 그 특성을 고려한 대응이 부족했다. 처벌 일변도의 형벌주의는 이들을 사회로 복귀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전과자라는 낙인을 찍어 사회적 고립만을 불러왔다.
검찰은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 발달장애인에게 특화된 교육과 상담을 조건으로 기소를 미루는 방식을 선택했다. 제도의 핵심은 '처벌'에서 '교화'로, '몰이해'에서 '관용'으로 초점을 옮기는 것이다. 즉, 발달장애인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적절한 사회화를 통해 재범을 막자는 취지다.
교육은 보통 10~20회, 회기당 60분으로 진행된다. 초반에는 자기소개와 인생 그래프 작성으로 전문 강사와 라포르(공감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피의자의 성인지 수준을 진단한다. 이어 대인관계 속 접촉 상황 이해, 성폭력에 대한 통념 바로잡기, 성적 자기결정권 학습, 감정 표현과 분노 조절 훈련이 진행된다. 중반부에는 성희롱·성추행·스토킹 등 범죄 개념을 배우고 피해자 시각에서 사건을 재구성해 공감 능력을 높인다. 마지막에는 다시 성 인식을 점검하고 서약서를 작성해 교육을 마무리한다.
검찰은 발달장애인지원센터와 협력해 피의자의 성장 배경과 생활환경을 조사하고, 필요할 경우 복지관 도시락 지원, 미술치료, 가족 상담 등 지역사회 자원을 연계한다. 교육 이행 여부는 보호관찰소가 확인하며, 불성실할 경우 기소 절차가 재개되기도 한다.
◇회복 꿈꿨지만 제도는 현실에 막혀
'발달장애인 교육 조건부 기소유예' 제도는 이후 서울중앙·동부·남부·서부지검, 수원·인천·울산·부산·광주·제주지검 등 약 20개 검찰청으로 확산했다. 각 검찰청은 보호관찰소, 장애인 지원단체, 변호사 단체 등과 협약을 맺고 운영을 이어가며 제도 정착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의 평가는 냉정했다.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히는 건 전문 강사 부족과 예산 미비다. 법적 기반도 부실하다. 현재는 '검찰청 사건사무규칙 제118조'에 따른 내부 지침에 근거해 운영되는 수준이다. 제도 법제화를 담은 발달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이 2022년 국회에 제출됐지만 회기 종료로 폐기되면서 제도적 뒷받침은 여전히 공백 상태다.
권 검사는 "발달장애인 피의자 특성을 고려해 시작한 이 제도를 더 확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법적 뒷받침과 예산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발달장애인 피의자를 다수 대리해 온 한 변호사 역시 "이 제도는 단순히 처벌을 미루는 임시방편이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 돼야 한다"며 "법제화와 예산 지원 등 협력 체계가 뒷받침돼야 현장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