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100년 역사 가진 세계 제련소 추월
생산시설 확장하고 계열사 설립해 사세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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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명예회장이 남긴 경영 철학은 간단하면서도 무게 있다. 그는 생전 "나는 혁신이나 개혁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늦은 것이다. 매일매일 조금씩 발전해 나가면 한꺼번에 큰일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 개혁보다는 변화가 중요하다"고 했다. 결국 성실함을 강조한 셈이다.
최 명예회장은 1941년 황해도에서 고(故) 최기호 고려아연 초대회장의 6남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1960년 경기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 학사와 미국 콜롬비아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가족으로는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역임한 유중근 총재와 결혼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을 비롯하여 2남1녀를 뒀다.
◇ "7000만 달러 필요" 주장에…최 명예회장, 4500만 달러로 공사
최 명예회장은 고려아연 설립을 준비할 당시부터 어려운 과제에 직면했다. 1973년 정부에서 '중화학공업 육성계획'을 발표했고, 당시 아연, 연 광산 사업을 하던 고려아연이 제련업종을 담당하는 회사로 선정됐다. 그는 특히 그는 정부, 금융회사 등 여러 관계자들과 수없이 만나 협의한 끝에 1974년 8월 1일 단독회사를 설립했다.
무엇보다 사업에 필요한 자금 확보가 문제였다. 최 명예회장은 자금 마련을 위해 국내에선 국민투자기금과 산업은행 등에서 빌렸고, 수소문하다보니 IFC(후진국 민간기업에 투자하고 자금을 빌려주는 세계은행 산하 국제기구)를 알게 됐다. IFC에서 사업자금으로 7000만 달러(한화로 약 700억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5000만 달러에 해낼 수 있다고 설득했다. 이후 턴키방식이 아닌 직접 구매에서 건설까지 하는 방법을 택했고, 결국 IFC의 예상을 뒤엎고 4500만 달러로 공사를 완성했다.
최 명예회장은 이어 대단위 제련소 건설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준비했다. 온산 비철단지 내에 제련소를 설립할 때부터 기술 수준과 규모 면에서 세계 최고의 제련소를 건설한다는 밑그림을 그리고, 대단위 아연제련소 건설에 대한 경험이 일천했던 국내 현실을 감안해 기본계획과 프로세스 특허를 외국에서 도입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투자시에는 비용절감이나 효율성을 따지기보다 최신 기술과 미래 연관 사업과의 상호 보완 관계에 무게 중심을 두는 장기 전략을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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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연구소 설립하고 생산시설 확장, 서린상사 등 계열사 설립
최 명예회장은 1980년부터 1992년까지 사장과 부회장으로 재임 시 기술연구소 설립과 생산시설 확장에 힘을 쏟았다. 아연, 연, 동제련 통합공정, DRS공법의 연제련공장을 착공과 더불어 아연괴 LME 등록으로 경쟁력을 강화했다. 또한 1983년 영풍정밀, 1984년 서린상사, 1987년 코리아니켈 등 계열사를 설립해 기업을 확장했고 1990년 기업공개를 추진했다.
최 명예회장은 1992년 3월 회장 자리에 올랐다. 이후 아연공장 및 연 제련 공장을 계속 증설해 나갔고, 호주에 아연제련소 SMC를 설립하며 글로벌로 사업기반을 확대해 나갔다.
SMC는 추후 현 최윤범 회장도 사장을 맡을 만큼 고려아연에 중요한 계열사로 자리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