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드라마 ‘나의 에어리언’으로 이어진 변화, 또 다른 매력을 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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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무대에 설수록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동시에 행복도 커진다. 그 두 감정이 자신을 계속 앞으로 밀어주는 힘이 된다고. 연극을 업으로 삼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묘한 모순의 감정, 그가 말하는 '아쉬움 속의 행복'은 배우로서의 생명력과도 닮아 있다.
작품을 선택할 때 그는 '연기적 성장'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 "배우는 캐릭터의 내면을 이해하고 표현해야 하는 직업이에요. 제가 경험하지 못한 인물을 만날 때마다 두려움이 있지만, 그걸 탐험해 가는 과정이 저를 성장시킵니다." 대학로 무대에서 쌓은 경험이 그에게 '탐험'의 습관을 남겼다. 그는 늘 새로운 인물을 만나기 전에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말할까, 왜 이렇게 숨을 쉴까." 그 질문의 반복 속에서 캐릭터가 조금씩 살아난다.
대학로라는 공간의 의미를 묻자, 잠시 생각을 멈춘 그는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미러룸 같다"고 표현했다. "준비가 되어 있을 때는 거울 속 제 모습을 똑바로 볼 수 있지만, 준비가 덜 됐을 땐 제 자신을 피하게 되죠. 관객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객은 그 거울을 보는 눈이에요. 배우로서 떳떳할 때만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는 관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의 반응은 그에게 "더 집중해"라는 신호로 다가온다. "반응이 너무 좋을 때도, 너무 없을 때도 결국은 제 연기에 집중해야 합니다. 관객의 호흡을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되 흔들리지 않는 게 중요하죠." 무대 위에서의 집중은 그에게 훈련된 고요함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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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캐릭터를 통해 인간의 허점을 들여다본다. "극 중 인물의 등장과 퇴장으로 장면이 바뀌고, 그 장면마다 반드시 보여줘야 할 목표가 있어요. 도어 파스 코미디는 타이밍이 생명이라 매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권혁에게 무대는 하나의 악보와 같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타이밍, 대사의 호흡, 시선의 전환 하나까지도 모두 음악처럼 계산된다. 그 미세한 리듬이 모여 공연의 완성도를 만든다.
그는 함께 무대에 서는 배우들과의 협업도 중요하게 여긴다. "배우마다 연기 디테일이 다르잖아요. 서로 충분히 얘기하고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서로의 연기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공연이 살아납니다."
오픈런 공연의 특성상 회차가 많고 관객의 반응이 매번 다르지만 그는 늘 '오늘 처음 연극을 보는 관객'을 떠올린다. "공연을 보러 오신 분들 중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극을 보는 분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분이 '재밌었다, 보길 잘했다'고 느끼게 만들고 싶어요." 체력 관리를 위해 매일 아침 러닝을 하는 습관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적당히 달리면 집중력이 놀라울 정도로 좋아집니다. 몸이 깨어나야 감정도 깨어나는 것 같아요."
다음 무대는 심리극 '오를라'다. 프랑스 작가 모파상의 동명 단편을 원안으로 한 작품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에 사로잡힌 한 남자의 광기와 환상을 다룬다. "환각과 망상에 빠진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권혁이 아닌 모파상으로서 이해해야 해요. 이 작품은 제가 맡은 캐릭터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느냐가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오가는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호흡의 디테일'을 가장 중요한 장치로 꼽았다. "호흡은 감정의 크기를 바꾸는 유일한 언어예요. 조금만 빠르게 내쉬거나 멈추는 타이밍을 달리해도 관객은 그 차이를 느낍니다."
'오를라'는 2인극이다. 그는 "내 연기로 상대의 연기를 돕자"는 마음으로 연습하고 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몰입해야만 무대가 완성되니까요." 연출을 맡은 정구진과는 오랜 호흡을 이어가고 있다. "작품이 어려울수록 배우가 연출에게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작품의 난도를 핑계로 삼는 것 같아요. 제 해석을 매 연습 때 직접 증명하고 싶습니다." 그의 말에는 배우로서의 책임감과 자존심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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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수는 저와 성격이 완전히 달라요. 말투도, 생각하는 방식도 달라요. 그런데 오히려 그 다름이 끌렸어요. 낯선 인물 안에서 저 자신을 새로 발견할 수 있거든요." 그는 광수를 "단순하기 때문에 솔직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그 솔직함이 관객에게 재미와 호감을 주는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SF·로맨스·코미디가 결합된 장르라는 점도 그에게 흥미롭게 다가왔다. "무대에서 배운 건 '이해의 깊이'예요. 캐릭터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감각은 어떤 매체에서도 통합니다." 연출을 맡은 김인옥 감독과의 협업에 대해서는 "배우를 편하게 만들어주는 분"이라며 웃었다. "감독님은 열린 자세로 소통하시고, 상대를 존중하세요. 그런 현장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이번 작품을 통해 그는 "진지한 권혁이 아닌, 유쾌한 권혁"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 무대에서는 깊이 있는 역할이 많았지만, 이번엔 제 안의 다른 면을 꺼내고 싶어요. 보는 분들에게 밝은 에너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는 자신을 "성실한 배우"로 기억해주길 바란다. "지금도 좋다, 그래서 다음이 더 기대된다"는 말이 그에게 가장 듣고 싶은 평가다. 공연이 끝나면 캐릭터를 깔끔히 털어내지만, 그 아쉬움은 늘 다음 작품을 향한 원동력이 된다. "무대 위에서 살아 있는 인물을 연기했다면, 무대 밖에서는 다시 현실의 시간을 살아야 하잖아요. 그 균형이 중요합니다." 배우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태도다. "관객이 배우의 연기를 보러 와주셨기 때문에 소통이 가능한 거예요. 그래서 언제나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의 끝에서 그는 잠시 웃으며 말했다. "제 연기를 보시는 그 순간이 후회 없는 시간이 되도록, 감동과 행복을 전하겠습니다."
배우 권혁에게 무대는 여전히 가장 따뜻한 거울이다. 그는 그 거울 앞에서 매일 새로이 자신을 비추고, 관객의 시선을 통해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한다. 대학로의 밤이 다시 밝아올 때, 그는 또다시 그 거울 속으로 걸어 들어갈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어김없이, 감동과 행복을 전하겠다는 약속을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