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소식지 北에 전달하려 무인기 3대 구입해 연습했지만 중단"
"전후납북자 516명 아닌 522명 '억류자' 6명 포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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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4월 미국 교계의 초청 및 유엔에 대한 납북자 실태 확인 진정을 위해 이재근, 진정팔, 김병도, 고명석 씨 등 귀환 납북자들과 미국을 방문한 최 이사장은 당시 이태식 주미 대사와 위성락 정무공사의 초청을 받고 어리둥절했다. 일정에 없는 일이었다.
최성룡 이사장은 18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방미 일정 중에 이태식 대사가 뉴욕 일정을 취소하고 납북자들을 초청하고 싶다고 해서 찾아갔더니 생각지도 못한 위로와 대접을 받았다"며 "당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위성락 정무공사는 대사관 직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성금이라며 2천 달러가 든 봉투를 찔러줬다. 엉엉 울었다"고 회고했다.
최 이사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일화도 소개했다. 노 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이었던 시절 최 이사장에게 300만 원을 쥐어주며 "납북자 문제를 열심히 돕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2019년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실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한 총리 회담, 장관급 회담 등에서 납북자 문제를 18차례 제기했다. 역대 보수 정부보다 적극성을 보인 셈이다.
이에 더해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 체결 이후 납북피해자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전후납북자법)이 제정된 시점도 2007년이다. 특히 해당 법률 4조에 '국가의 책무' 조항을 명시하도록 힘쓴 인사는 당시 실무자였던 김남중 통일부 차관이었다는 게 최 이사장의 말이다. 또한 이종석 국정원장은 노무현 정부 당시 32대 통일부 장관으로서 전후납북자들의 실태 파악을 물밑에서 조율하며 516명 전후납북자 명단을 정리할 밑바탕을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최 이사장과의 소통에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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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최 이사장은 보수 정부에 대해서는 실망감을 토로했다. 특히 윤석열 정부 당시의 통일부가 전후납북자에 대해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최 이사장은 "윤석열 정부 당시 한 통일부 고위 인사는 납북 피해자들의 '급'을 나누고 대했다고 들었다"며 "당시 억류자 6인에 대한 관심은 높아진 반면 납북 피해자들은 소외당하고 있다고 느꼈다"고 토로했다.
최 이사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겪은 노무현 정부 당시의 인사들이 돌아왔기 때문에 이들의 남북대화를 위한 노력에 협조하기 위해 대북전단을 중단한 것"이라고 밝혔다.
최성룡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이사장은 지난 1993년 비전향장기수인 이인모 씨를 북송한 정부의 조치에 대한 항의를 시작으로 지난 2000년 납북자가족모임을 결성해 본격적인 납북자 생사확인 및 송환 운동을 벌여왔다. 최 이사장 역시 납북피해자 가족으로 부친 최원모 씨가 1967년 6월 납북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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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가족회) 자체의 의견도 있었고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이재명 정부 요직에 앉은 것도 영향이 있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이종석 국정원장, 정동영 통일부 장관, 김남중 통일부 차관 등이다. 이들은 모두 노무현 정부 당시 전후납북자 문제에 진정성있는 자세로 임했던 분들로 기억한다."
△어떤 진정성을 의미하나.
"노무현 정부 당시 이종석 통일부 장관에게 납북자 실태 조사와 관련한 건의를 했었다. 국가정보원이 갖고 있는 납북자 관련 정보 등을 통일부가 종합해 정리해달라는 것이었다. 당시는 전후 납북자는 457명 정도가 집계된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보와 자료들이 혼재돼 있었다. 당시 이 장관 주도로 납북자 관련 특별팀이 꾸려졌다. 이를 바탕으로 전후납북자 516명 명단이 정리된 것으로 안다. 정동영 장관의 경우 납북자와 관련한 내 의견을 자주 경청했다. 김남중 통일부 차관은 전후납북자법 4조에 '국가의 책무' 다섯자를 명시하는데 많은 애를 썼다. 전단활동을 하는 중에 정 장관, 김 차관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바로 중단한 이유다. 무인기 3대를 구입해 북한에 보내려고 연습을 많이 했었는데, 무인기도 가동하지 않았다."
△납북자 문제에 대한 이재명 정부의 진정성은 어떤가.
"이재명 대통령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다만 위성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좋은 기억이 있다. 지난 2006년 4월 이재근, 진정팔, 김병도, 고명석 씨 등 귀환 납북자들과 미국 교회에 간증과 유엔에 대한 진정 차원에서 미국을 방문했는데 체류 일주일 정도됐을 때 갑자기 주미 대사관에서 연락이 왔다. 당시 이태식 대사였는데, 대사관으로 오실 수 있겠느냐 초청을 받았다. 뉴욕 출장 일정까지 취소하고 우리를 만나 대접하고, 위로를 해준 것이다. 대사가 직접 챙겨주니 나도, 귀환 납북자들도 눈물이 나더라. 저녁 식사 후 나오는데 위성락 당시 공사가 나에게 '납북자 탈출시키느라 고생하신다'며 봉투 하나를 찔러주더라. 보니 2천 달러가 있었다. 대사관 직원들이 각출해서 모은 성금이라며 전달받았다.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일화도 있나.
"노 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을 할 당시 만났는데, 사비로 300만 원을 받았다. 그러면서 납북어부 문제는 열심히 돕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즈음에 서명한 법률도 전후납북자법이었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는다."
△윤석열 정부도 전후납북자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통일부 고위 간부가 나에게 '급이 안 된다'는 발언을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윤석열 정부는 납북자 문제보다는 6인 억류자에 대한 관심이 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우리 가족들이 소외당한다고 느꼈다. 당시 통일부가 억류자 이슈를 앞세우면서 납북피해자들의 '급'을 나누려는 것으로 느꼈다. 엄밀히 말하면 북한 억류자 6인은 지난 2023년 11월 통일부가 '납북피해자 보상 및 지원심의위원회'를 통해 납북자로 인정됐기 때문에 전후납북자로 구분되는 게 맞는다. 전후납북자는 516명이 아닌, 522명로 바로잡아야 한다. 납북자, 억류자, 국군포로를 상징하는 세송이물망초를 심볼도 채택됐는데 해당 심볼 논의 과정에서 전후납북자들의 의견은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수 정부서 임명된 통일부 장관들로부터 고발당한 사연도 있다."
△대북전단 살포 방식으로 가족 소식지를 보내게 된 계기는.
"전후납북자의 생사확인과 송환을 위해 북한인권단체들이 이와 관련된 내용을 유엔 등에 대신 진정해 오고 있었다. 영문 서류를 작성하지 못하는 등의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북한에서 이와 관련한 답변을 제대로 준 적이 없다. 그래서 유엔 인권 서울사무소 등을 통해 유엔 무대에서 납북자 생사확인과 송환을 위해 직접 발언할 기회를 마련해달라는 의사를 타진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평양시민명부, 납북자 단체 사진 등 납북자들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북한으로부터 입수해 이를 활용해달라고 정부, 시민단체, 유엔 등에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북한에 떠들겠다는 취지로 가족소식지를 대북전단 방식으로 2024년부터 날렸다."
△북한에 생존해 있는 납북자들의 현황은 파악이 되나.
"여러 여건상 현재로서는 파악이 어렵다. 구출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우리 납북자들은 많이 생존해 계시다. 정부가 집계한 516명 가운데 350명 이상은 생존해 있을 것으로 본다. 노무현 정부 당시 인사들이 요직에 왔으니 이번 기회에 남북대화를 성사시켜 가족들의 생사확인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