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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숙의 서울ON] 출산 장려 넘어 돌봄 인프라로…서울시, 저출생 정책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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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숙 기자

승인 : 2026. 03. 20. 06:00

출산 장려에서 돌봄 인프라 구축으로, 저출생 정책 패러다임 변화
손주돌봄수당·키움센터…도시가 만드는 돌봄 인프라
늘봄학교와 서울 돌봄 정책…저출생 해법의 실험
오세훈 시장, 동작구 우리동네키움센터 방문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2월 23일 서울 동작구 우리동네키움센터 13호점에서 열린 방학 돌봄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아이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정재훈 기자
저출생 정책은 오랫동안 '출산 장려금' 중심에 머물러 있었다. 아이를 낳는 순간에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산율이 계속 하락하면서 정책의 질문도 달라졌다. 이제 중요한 것은 "아이를 낳을 것인가?"가 아니라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는가?"라는 문제다. 최근 서울시가 추진하는 정책들은 이러한 변화를 보여준다. 출산 장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양육과 돌봄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초점이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형 손주돌봄수당이다.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는 가정에 월 30만원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맞벌이 가정의 돌봄 공백을 가족 돌봄 네트워크로 보완하려는 취지다. 서울시 육아정책 가운데 만족도가 가장 높은 정책으로 평가된다. 최근 열린 간담회에서도 효과가 확인됐다. 한 참여자는 "부모님께 아이를 맡길 때마다 미안했는데 정책 덕분에 부담이 조금 덜어졌다"고 말했다. 손주 양육을 하는 조부모 역시 "손주를 돌보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삶의 활력이 된다"고 전했다. 이는 정책이 단순한 현금 지원을 넘어 가족 돌봄을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제도적 장치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돌봄 정책은 영유아 단계에 머물지 않고 초등 돌봄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서울시는 '우리동네 키움센터'를 중심으로 아침 돌봄과 야간 연장 돌봄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맞벌이 가정의 출퇴근 시간대에 발생하는 돌봄 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다. 오전 7시부터 아침 돌봄이 운영되고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돌봄 서비스도 확대되고 있다. 이는 도시 차원에서 생활 밀착형 돌봄 인프라(care infrastructure)를 구축하려는 정책적 흐름을 보여준다.

사진2. 오세훈 서울시장이 14일(토), '서울 200인의 아빠단' 발대식에서 참가 가족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4일 백범광장에서 진행된 '서울 200인의 아빠단' 발대식에서 참가 가족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서울시
저출생 대응 정책은 돌봄 인프라 구축을 넘어 양육 문화의 변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의 '서울 200인의 아빠단'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아빠들이 육아 경험을 공유하고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며 육아가 특정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부모가 함께 수행해야 할 역할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올해 아빠단 모집에서는 상징적인 장면도 나타났다. 당초 200명을 선발할 계획이었지만 지원자가 2500명 이상 몰리면서 최종 250명으로 확대됐다. 육아와 돌봄이 더 이상 '엄마의 몫'이 아니라 부모가 함께 책임져야 할 영역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저출생 대응 정책은 이미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이어져 왔다. 교육부가 추진하는 '늘봄학교'가 대표적이다. 늘봄학교는 방과 후 돌봄 공백으로 학원을 전전해야 하는 현실을 개선하고 사교육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됐다. 정규 수업 이후 학교에서 다양한 프로그램과 돌봄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기존 방과후학교와 초등 돌봄교실을 통합해 운영한다. 이 제도는 학교 공간을 중심으로 교육과 돌봄을 결합한 '에듀케어(educare)' 모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24년 1학기 시범 운영 이후 학부모들의 호응 속에 2학기부터 전면 시행됐다.

당시 교육부는 학부모 설문조사를 통해 돌봄 공백과 사교육비 부담이 저출생의 주요 요인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늘봄학교는 이 두 문제를 동시에 완화하려는 정책적 시도다. 다만 시행 초기인 만큼 향후에는 프로그램의 질과 다양성, 운영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저출생 대응 정책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참여정부 시기인 2003년 출범했다. 이후 이명박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산하로 조정됐다가 2012년 다시 대통령 직속 기구로 격상됐다. 20년 넘게 수많은 정책이 발표됐지만 저출생 문제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가장 큰 국가적 과제로 남아 있다. 부모들이 가장 크게 호소해온 문제 역시 돌봄의 공백이었다. 출산 장려금보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과 육아의 부담이 더 컸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 등장하는 정책들은 늦은 대응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정책의 방향이 출산 장려 중심에서 양육 환경 구축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 기반의 에듀케어 모델, 지역 기반의 돌봄 인프라 확충, 부모의 육아 참여 확대 같은 변화가 이를 보여준다.

출생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정책으로. 서울에서 시작된 변화가 그런 방향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서울형 손주돌봄수당 조부모 간담회(단체사진)2
지난 12일 열린 '서울형 손주돌봄수당 조부모 간담회'에서 서울시 관계자와 참가자들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서울시
박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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