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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뱅크시를 찾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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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민 기자

승인 : 2026. 03. 26. 18:18

Banksy Unmasked <YONHAP NO-3712> (AP)
2022년 11월 1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인근 보로디안카의 전쟁으로 파손된 건물 앞에서 한 주민이 뱅크시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벽화를 사진 촬영하고 있다./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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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거리 미술가 뱅크시는 '얼굴 없는 화가'로 불린다. 1990년대부터 활동해 온 그는 신원을 숨긴 채 세계 곳곳에서 갖가지 기행을 펼치며 세계적인 예술가가 됐다.

뱅크시의 행위에는 목적과 풍자가 있다. 그는 2005년 영국 대영박물관에 잠입해 전시된 유물들 사이에 소를 사냥하고 쇼핑하는 원시인이 그려진 돌 하나를 몰래 진열했다. 사흘 동안 아무도 뱅크시의 무허가 전시를 알아채지 못했다. 박물관 측이 주장하던 우수한 관리 시스템을 유쾌하면서도 날카롭게 꼬집은 일화다.

2018년 영국 런던 소더비 경매장에서 자신의 작품을 갈아버린 사건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뱅크시의 그림 '풍선과 소녀'가 104만2000파운드(약 20억9000만원)에 낙찰됐다는 망치 소리가 울리자마자 그림의 절반 정도가 액자에서 빠지면서 기계에 분쇄되는 쇼가 펼쳐졌다. 상업화된 미술시장을 비판하기 위해 경매 현장에서 자신의 작품을 훼손하며 예술을 돈으로 평가하는 세태를 조롱한 것이다. 이 작품은 3년 후 같은 경매에서 이전 대비 18배가 넘는 1870만 파운드(약 275억9000만원)에 낙찰됐다.

뱅크시는 주로 국가권력이나 자본주의의 문제점, 인권 보호 필요성, 반전(反戰) 사상 등을 전파한다. 특히 전쟁 관련해서는 직접 분쟁 지역에 뛰어들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동원해 온몸으로 표현한다.

뱅크시는 2015년 2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 벽면에 털실을 가지고 노는 고양이를 그렸다. 벽 앞에 놓인 철근 덩어리를 털실로 묘사한 그림에는 폐허 속 참혹한 현실에 무관심한 우리의 인식에 대한 비판이 담겼다. 당시 온라인으로 공개한 2분짜리 단편 영상에서 뱅크시는 "인터넷에서 사람들은 가자지구 상황에는 관심이 없지만 고양이 사진에는 관심을 가진다"고 지적했다.

2022년에는 우크라이나 키이우 인근 보로디안카에서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 벽에 유도복 차림의 아이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닮은 성인 남성을 바닥에 패대기치는 모습을 그렸다. 우크라이나는 힘이 아니라 의지와 전략으로 버틴다는 것을 말하는 이 그림은 우크라이나 우체국에서 우표로 만들기도 했다.

뱅크시가 과감하게, 때로는 발칙하게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원동력 중 하나는 익명성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서사가 드러나지 않으니 작품의 메시지가 명확하고 오롯이 전달된다.

뱅크시의 신원을 두고 그동안 여러가지 추정이 나왔다. 그럼에도 그의 익명 활동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문제는 없었으나 최근 분위기는 다르다. 로이터 통신이 뱅크시의 신원을 구체적으로 특정한 보도는 얼굴 없는 예술가의 행보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우려를 부른다.

익명성은 권력과 체제를 향해 자유롭게 발언하는 것이 가능하게 하는 보호막이기도 하다. 우리는 뱅크시를 찾는 것보다 뱅크시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 집중해야 한다.
김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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