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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침몰을 늦추는 선택’…유통업계의 생존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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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경 기자

승인 : 2026. 03. 26. 18:05

정문경 증명사진 고화질 크롭본
"우리는 침몰하는 배 안에 있습니다. 침몰 속도를 늦추는 게 지금 우리가 나아갈 길입니다."

최근 한 유통업체 대표가 사내 타운홀 미팅에서 던진 이 말은 현재 유통업계가 직면한 현실을 관통한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경영 기조를 묻는 질문에 잠시 말을 고르더니 "투자나 확장을 고민할 여력이 없다. 일단 버티는 게 먼저"라고 덧붙였다. 과거처럼 점포를 늘리고 몸집을 키우던 확장의 시절은 저물고, 대신 비효율을 걷어내고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접는 생존을 위한 시간이 도래했다.

국내 2위 대형마트인 홈플러스가 잇따라 점포 문을 닫는 가운데, 롯데마트와 이마트 등 주요 사업자들도 출점에 대한 소식은 자취를 감췄다. 실적 반등에도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전체 유통 시장에서 대형마트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처음으로 10% 아래로 떨어진 반면, 온라인 채널 비중은 59%까지 치솟으며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TV 시청 인구 감소와 소비 패턴 변화 속에서 홈쇼핑 산업도 하락 국면에 들어섰다. 주요 홈쇼핑 사업자들의 매출은 최근 수년간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체 거래 규모 역시 줄어드는 흐름을 보이며 산업 전반의 성장세가 꺾인 모습이다. 가장 큰 요인은 핵심 채널인 TV의 영향력 약화다. 소비자 다수가 모바일을 통해 쇼핑과 콘텐츠를 동시에 소비하는 형태로 전환되면서, TV 중심 모델의 한계가 뚜렷해지고 있다.

편의점 업계 역시 외형 성장의 한계에 직면하며 전략 수정에 나서고 있다. 그동안 점포 수를 빠르게 늘리며 몸집을 키워왔지만, 최근에는 출점 속도가 둔화되고 일부 점포는 정리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GS25와 세븐일레븐, 이마트24 등 주요 사업자들은 점포 수를 줄이거나 증가세가 꺾였고, CU 역시 신규 출점 규모를 크게 낮추며 속도 조절에 나섰다. 과거처럼 공격적인 출점 경쟁을 이어가기보다는, 기존 점포의 수익성과 효율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다.

이처럼 주요 유통기업들은 최근 몇 년 사이 인력 축소와 자산 유동화 등 강도 높은 구조 재편에 집중해왔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들이 미래를 위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기보다는 당장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숫자를 관리하는 데 머물고 있다는 점은 뼈아픈 대목이다.

침몰 속도를 늦추는 선택은 위기를 버티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다. 이 시간이 단순한 유예에 그칠지, 새로운 전환을 준비하는 기회가 될지는 아직 열려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물고, 콘텐츠와 경험을 결합하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이 변화가 새로운 성장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도 있다. 비용을 줄이고 구조를 정비하는 지금의 움직임이 결국 새로운 성장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유통업계의 다음 선택에 시선이 쏠린다.
정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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