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받고 범죄 저지르는 '범죄 대행'
日, 수년째 '야미바이토'에 곤혹
장난 수준에서 살인으로 진화
국내서도 유사 범죄 반복…'보복'에만 초점
"불특정 다수 겨냥한 범죄 플랫폼화"
|
#2026년 1~2월 경기도 일대에서 남의 집 현관문에 인분이나 음식물쓰레기를 투척하고, 래커칠을 하거나 명예훼손성 유인물을 뿌린 범죄가 발생했다. 피의자들은 고액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다가 SNS상에서 '시키는 일을 해주면 돈을 주겠다'는 말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이를 짓궂은 '장난'이거나 원한을 풀기 위한 '보복'으로 규정했다. 신종 범죄로 최근 언론에 소개되고 있는 '보복 대행'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핵심은 이 범죄가 '대행'으로 실행됐다는 것이다. 즉, 장난이나 보복을 대행할 수 있다면 다른 범죄에서도 얼마든지 대행이 이뤄질 수 있다. 더 큰 돈이 대가로 주어진다면 더 체계화된 범죄단체가 조직적으로 대행 범죄를 자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바다 건너 일본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어둠의 아르바이트'가 자타공인 '치안 대국'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강도·살인까지…지시자는 '범죄 조직'
#2023년 5월 일본 도쿄 긴자에서 16~19세 남성 4명이 칼을 들고 시계 매장에 침입해 직원을 협박한 후 진열장을 깨뜨려 3억856만 엔(한화 30억여원) 상당의 귀금속을 강탈했다.
#2024년 10월 일본 요코하마시의 한 주택에서 75세 남성이 손발이 묶인 상태로 피를 흘리며 사망한 채 발견됐다. 피의자들은 SNS를 통해 사주 받고 주택에 침입, 남성을 폭행해 살해한 뒤 현금 20만엔(한화 189만여원)을 빼앗았다.
'어둠의 아르바이트'를 뜻하는 야미바이토(闇バイト)는 SNS와 메신저 등을 통해 청소년·청년층을 고액으로 유혹해 각종 범죄에 가담시키는 것을 말한다. '고액 알바비'의 대가는 이미 강도·살인으로까지 비화한 상태다. 일본 경찰청은 지난 2일 야미바이토에 대응하기 위해 '경찰조직 개혁'을 단행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야미바이토의 시작은 우리나라처럼 경범죄에 불과했다. "헤어진 연인의 뒤통수를 한 대 쳐주세요", "좋아하는 사람의 소지품 중 하나를 훔쳐 와 주세요" 등 일본 특유의 감성을 대변하는 '만화적' 일이었다.
|
코로나19는 야미바이토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경제 활동이 위축되고 청년층 실업이 증가하면서, 단기간에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이끌린 사람들이 급증했다. 비대면 소통이 일상화되며 SNS 기반 모집은 더욱 활성화했다. 이 시기를 거치며 야미바이토는 '분업형 범죄 조직'으로 진화했다. 지시자, 모집책, 실행자가 서로 얼굴조차 모른 채 연결되는 이 구조에 대해 '익명·유동형 범죄 조직(토쿠류·トクリュウ)'이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일본 경찰은 관련 범죄를 '신종 수법'으로 개별 분류해 특집 백서를 발간하고 중점 수사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토쿠류로 검거된 이들은 1만2178명으로, 2024년 대비 2073명 급증했다.
이제 야미바이토에는 '범죄 단체'까지 가담하고 있다. 지휘 계층에 위치한 범죄 조직이 흔적을 남기지 않고 하위 실행자들에게 범죄 실행을 지시하는 구조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초국적 사기·강도 네트워크와 연계된 사례도 보고된다. 그러나 실행자들이 빠르게 해산했다가 다른 인원들로 금세 다시 결성되는 특성 때문에 조직의 구조와 활동 규모를 명확히 밝히는 데 난항을 겪는 상황이다.
◇한국에서도 '범죄의 플랫폼화' 진입
한국판 야미바이토는 올해 들어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찰이 '보복 대행'이라 이름 지은 범죄가 전국 각지에서 연이어 발생하는 추세다. 지난 2일 경찰청에 따르면, 전국 13개 시도청에서 '보복 대행' 범죄가 모두 53건 신고됐으며 이 가운데 45건의 실제 행위자 40명이 검거됐다. 경찰은 범죄의 지휘자, 즉 '상선'이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은 6일 정례 간담회에서 "운영자와 공범, 정보제공책, 실행자 등 4명을 구속 송치했다"며 "앞으로 의뢰자에 대한 수사가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경찰청은 '집중 수사관서' 지정도 검토하고 있다. 같은 날 경기남부경찰청 역시 해당 범죄와 관련해 23명을 추가로 입건했다.
|
더구나 경찰의 수사 방향이 '보복'에만 치우쳐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범죄를 의뢰하고 또 가담할 수 있는 '범죄의 플랫폼화' 단계에 진입한 정황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의 수사 확대에도 SNS에는 여전히 범죄 광고가 난무하고 있다. 마치 식당 메뉴를 고르듯 범죄를 선택·주문할 수 있는 시스템까지 갖춰져 있다(<[르포]"돈만 주면 뭐든지 합니다"…난무하는 '범죄 대행' 서비스, 직접 접촉해보니> 기사 참조).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과 교수는 "보복 범죄는 특정한 원한이나 갈등 관계를 전제로 했지만, 지금은 전혀 관계없는 대상에 대해서도 범죄를 의뢰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며 "이처럼 제3자를 통해 범죄를 대행하는 구조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사회적 불안과 공포를 키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이런 형태가 반복되면 보이스피싱 조직처럼 하나의 범죄 조직, 나아가 '비즈니스 모델'로 발전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