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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989년 5월 인민대회당에서 리펑(李鵬) 당시 총리와 공개 면담을 벌이며 중국 전역에 이름을 알렸다. 당시 그는 단식투쟁 중 환자복 차림으로 나타나 중국 지도부를 정면 비판했고, 이 장면은 해외 언론을 통해 전 세계에 보도됐다. 이후 그는 왕단(王丹), 차이링(柴玲) 등과 함께 천안문 세대를 대표하는 얼굴로 알려졌다.
그러나 같은 해 6월 중국 정부가 시위를 무력 진압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우얼카이시는 중국 공안당국의 수배 대상이 됐고, 이른바 '황새작전(Operation Yellowbird)'으로 불린 비밀 탈출 경로를 통해 홍콩을 거쳐 프랑스로 망명했다. 이후 대만에 정착한 그는 중국 민주화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는 대만민주중국협회(Taiwan Association for Democracy in China) 회장을 맡고 있으며 중국의 인권 문제와 민주화 필요성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여러 차례 중국 귀국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2010년에는 일본 도쿄 주재 중국대사관에 들어가 자신을 중국으로 송환해 달라고 요구했다가 일본 경찰에 구금되기도 했다. 당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갈 권리를 달라"며 공개적으로 귀국 의사를 밝혔다.
우얼카이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망명생활의 고통을 털어놓았다. 그는 "망명은 매 순간이 정신적·영적 고문"이라며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중국에 들어가지 못해 마지막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37년이 지났지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며 "중국 민주화는 아직 끝나지 않은 과제"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