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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 20위’ 특약에 갇힌 신탁 정비사업…중견사 설 자리 좁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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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빈 기자

승인 : 2026. 06. 18.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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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자본 규제 예외 특례…시공 20위 내 건설사만 적용
신탁사들 규제 부담에 대형사 선호…중견사 입찰 기회 축소
중견·신탁사들 "순위 아닌 신용등급·재무 상황 함께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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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등 수도권 도심 주택공급의 대안으로 주목받는 신탁 방식 정비사업이 시공사의 '시공능력평가순위'를 잣대로 삼은 규제로 대형 건설사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탁사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된 자기자본 규제가 결과적으로 중견 건설사의 시장 진입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순위 자체가 재무 건전성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를 거친 건설사도 시공능력평가 순위만 회복하면 다시 신탁사의 규제 예외 대상에 들 수 있는 반면, 부채비율이 낮고 현금흐름이 안정적인 중견사는 순위 한 칸 차이로 입찰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사례가 나온다는 점에서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7월부터 신탁사의 토지신탁 취급 한도를 자기자본의 100%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의 금융투자업 규정 개정안을 시행하고 있다. 책임준공형 토지신탁 사업장에서 잇따라 부실이 발생하자 신탁사가 부담할 수 있는 위험액 총량을 자기자본 범위 내로 제한한 조치다.

문제는 이 기준을 정비사업에 그대로 적용할 경우 신탁사들이 대형 사업장 몇 곳만 맡아도 한도가 소진되는 구조라는 점이다. 현재 정비사업을 영위하는 신탁사 13곳의 평균 자본 총계는 4000억원 수준 정도다. 반면 정비사업은 사업비 규모가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에 달해 단일 사업장의 위험액만으로도 자기자본 한도에 근접할 수 있다.

이에 신탁업계는 정비사업에 한해 보증 이행 책임 범위가 자기자본 규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제도 개선을 요청해 왔다.

금융당국은 업계 의견을 일부 수용해 신탁 방식 정비사업에 한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 대출과 연계된 신탁계정대를 위험액 산정에서 제외하는 예외 규정을 마련했다.

다만 이 혜택은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다. 사업비 대출을 위한 표준사업약정서 특약에는 시공능력평가 순위 20위 이내 건설사가 시공을 맡고, 관리처분계획상 종후자산 가치 대비 보증승인 금액이 40% 이하인 경우에만 위험액 산정에서 제외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 때문에 시공능력평가 20위 밖 중견 건설사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이미 수도권 핵심 정비사업 시장이 대형 브랜드 아파트 중심으로 재편된 상황에서 신탁사들마저 규제 부담을 이유로 상위 20개사 위주로 시공사를 선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가 특히 문제 삼는 부분은 '시공능력평가 순위 20위'라는 획일적 기준이다. 시공능력평가 순위는 국토교통부가 최근 3년간 공사 실적과 경영·기술 능력, 신인도 등을 종합해 산정한다. 이에 따라 실제 재무 건전성과 시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순위가 20위 밖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업 참여가 어려운 중견 건설사 가운데서는 부채비율 200% 이하를 유지하며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갖춘 곳도 적지 않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과거 실적 중심의 시공능력평가 순위만으로는 현재의 재무 건전성과 사업 수행 능력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시공능력평가 순위 20~50위권 건설사 가운데 부채비율이 위험 수준인 곳은 많지 않다"며 "순위만을 기준으로 사업 참여 여부를 결정하다 보니 재무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는 중견사들까지 입찰 단계에서 배제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비사업의 특수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탁방식 정비사업은 조합원 소유 토지를 신탁받아 추진하는 구조여서 일반 개발사업과 달리 대규모 토지 매입비가 필요하지 않다. 상대적으로 사업 리스크가 낮은데도 일반 차입형 토지신탁과 동일한 위험액 산정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시장에서는 이 같은 구조가 조합원의 선택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시공자 후보군이 사실상 시공능력평가 20위 이내로 좁혀질 경우 사업 규모와 입지에 맞는 건설사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입찰 경쟁이 제한되면 공사비 협상력이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공사비 상승이나 조합원 분담금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특히 지방이나 사업성이 낮은 소규모 정비사업장의 경우 이러한 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신탁사 건전성 강화라는 정책 취지 자체에는 업계도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고금리 장기화와 PF 부실 우려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자기자본 규모가 크고 신용도가 높은 건설사를 우선하는 것이 사업 안정성 측면에서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정부와 보증기관 역시 중견 건설사들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업계의 불만에도 현재의 규제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입장이다. 자기자본 규모에 비해 과도한 프로젝트가 추진되면서 부동산 PF 부실이 확산했고, 이는 결국 건설업계 전반의 위기로 이어졌다는 판단에서다.

한 정부 산하 보증기관 관계자는 "중견 건설사들이 느끼는 어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보증기관의 기본 원칙은 위험을 관리하는 데 있는 만큼, 기준을 완화해 더 많은 시공사에 문호를 개방하는 것은 결국 보증 리스크를 확대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시공 순위라는 기준이 완벽한 잣대가 아니라는 점에는 공감한다"면서도 "그렇다고 보증기관이 먼저 위험 부담을 늘리는 방향으로 기준을 완화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신탁업계에서는 시공능력평가 순위 외에도 신용등급, 부채비율, 유동성, PF 우발채무 등 재무 상태를 함께 반영하는 복합 평가 체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한 신탁사 관계자는 "신탁사의 영업용순자본비율(NCR)만으로는 책임준공 확약 과정에서 발생하는 신용위험을 충분히 보여주기 어렵다"며 "사업장별 위험 요인을 보다 세분화해 반영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다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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