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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 낼 돈 없습니다. 차라리 집행유예를”…낯선 법에 무너지는 탈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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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기자 | 최민준 기자

승인 : 2026. 07. 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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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00건 안팎 법률상담…전담 변호사 제도는 없어
사건 뒤 상담·변호인 연계 중심…"예방형 법률지원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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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벌금 낼 돈이 없습니다. 차라리 집행유예 선고해 주십시오."

A씨는 북한에 남은 가족에게 생활비 명목으로 380만원을 보냈다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벌금형을 구형했지만, A씨는 변호사 선임 비용은 물론 벌금조차 감당할 형편이 되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전과가 남지 않는 벌금형 대신 전과가 남더라도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해달라고 호소했다. 일반적으로 집행유예가 벌금형보다 훨씬 무거운 형으로 취급된다. 재판부는 2년 넘게 이어진 재판 끝에 A씨에 대해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정착은 했지만 적응은 끝나지 않았다.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이 남한의 법과 제도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법적 분쟁에 휘말려도 적절한 법률 조력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과 정보 부족이 겹치면서 법 앞에서도 또 다른 소외를 겪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다수 탈북민은 사건이 발생해도 변호사를 선임할 경제적 여력이 없다. 통일부의 무료 법률지원 제도를 알지 못하거나, 생계를 위해 상담할 시간조차 내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결국 수사부터 재판까지 충분한 조력을 받지 못한 채 절차를 밟는 일이 반복된다.

B씨는 탈북 당시 가져온 말린 명태와 낙지를 다른 탈북민에게 나눠주고 소량의 감사비를 받았다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로 법정에 섰다. 영리를 목적으로 한 판매가 아니었지만 결국 위법 여부를 다투게 됐다. 탈북난민협회 관계자는 "남북한의 다른 법체계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상적인 거래를 했다가 형사사건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범죄조직이 탈북민의 경제적 어려움과 정보 부족을 노리는 사례도 있다. C씨는 "명의만 빌려주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자신의 명의를 넘겼고, 해당 명의는 대포통장과 대포폰 개설에 이용됐다. 법원은 명의대여 행위가 보이스피싱 등 후속 범죄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고 보고 C씨에게도 책임을 인정했다.

지원단체들은 사선변호사를 선임할 경제적 여력이 없거나, 이용 가능한 법률지원 제도를 알지 못하는 탈북민이 적지 않다고 설명한다. 생계를 위해 장시간 일하는 경우에는 평일 상담을 받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다.

통일부가 집계한 탈북민 법률상담 건수는 2023년 909건, 2024년 1216건, 지난해 1013건이었다. 올해도 5월까지 413건의 상담이 이뤄졌다. 정부와 관련 기관들은 정기 법률상담과 변호사 연계, 대한법률구조공단을 통한 소송대리·형사변호, 지원변호인제도 등을 운영하고 있다. 남북하나재단 종합상담 콜센터도 기본적인 법률정보를 제공하고 변호사 상담을 연계한다.

다만 통일부는 정착 초기 단계에서부터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탈북민 전담 변호사 제도를 도입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탈북민 지원단체들은 현재의 지원 체계가 사건 발생 이후 상담과 변호인 연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예방적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한 인권 전문 변호사는 "단발성 법률 상담만으로는 남한의 법과 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탈북민들이 겪는 다양한 법률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탈북민의 재판이 열리는 날이면 동료 탈북민들이 함께 법원을 찾기도 한다. 직접 변호를 하지 못해도 혼자 법정에 서게 둘 수는 없다는 취지에서다. 방청석을 지킨 이들은 재판이 끝난 뒤 피고인을 위로하고,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하기도 한다. 충분한 법률 조력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서로가 마지막 버팀목이 되는 셈이다.

김용화 탈북난민협회장은 "탈북민들은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법적 문제를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사건이 발생한 뒤 한두 차례 상담하는 수준을 넘어 탈북민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전담 변호사가 지속적으로 상담하고 사건을 지원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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