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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대법원 판결마저 뭉개려 한 양산시의 ‘특혜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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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이철우 기자

승인 : 2026. 09. 1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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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우4
이철우 전국부 기자
경남 양산시가 시민을 우롱했다.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을 통해 일반인의 출입 제한이 정당하다고 인정받은 공공공지에 시민 혈세 9000만원을 들여 다시 길을 내려 했다. 특정 상가의 접근성을 높여줄 수 있는 사업을 '개방형 산책로'라고 포장했지만, 말장난으로 사업의 본질까지 감출 수는 없다.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앞 제36호 공공공지는 평범한 보행 공간이 아니다. 법원은 이곳을 도로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 매연을 차단하고 경관을 유지하기 위한 '완충녹지형 공공공지'라고 명확히 판단했다.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하는 펜스 설치도 정당하다고 봤다. 이 판단은 고등법원을 거쳐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펜스를 무단으로 철거한 인근 상가 관계자들은 형사처벌까지 받았다. 양산시 역시 당시에는 고소·고발과 소송에 나서며 공공시설의 원칙을 지켰다.

그런데 이제 와서 시가 야자매트를 깔고 공공공지를 가로지르는 길 3~4곳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과거에는 통행을 막겠다며 법정까지 가더니, 이번에는 세금까지 들여 길을 터주겠다는 것이다. 행정이 이처럼 손바닥 뒤집듯 원칙을 바꾼다면 대체 누가 양산시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시의 해명은 더욱 궁색하다. 시는 통행로가 아니라 시민을 위한 '산책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공공지를 가로질러 뒤편 약국과 상가로 오갈 수 있도록 만든 길이라면 이름만 산책로일 뿐 실질은 통행로다. 간판만 바꿔 단다고 특정 상가에 돌아갈 편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정말 시민을 위한 산책로라면 왜 하필 대법원 판결로 출입 제한의 정당성까지 확인된 곳이어야 하는가. 왜 오랜 기간 통행로 개설을 요구해 온 상가 앞이어야 하는가. 누가 이 사업을 요구했고, 누가 추진을 지시했으며, 어떤 공익성 검토를 거쳐 9000만원이라는 예산을 편성했는가.

양산시는 이런 당연한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갈등 완화'와 '효율적 관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갈등 완화라는 명분으로 법과 원칙을 굽히고 일부 이해관계자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그것은 행정이 아니라 사실상의 민원 보상이다. 더욱이 그 비용을 아무 관련 없는 시민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 뻔뻔한 처사다.

특히 양산시는 시민 세금과 행정력을 투입해 관련 소송 네 건에서 모두 승소했다고 강조해 왔다. 그런데 그 승소의 결과와 판결 취지를 이번에는 또 다른 시민 세금으로 무력화하려 했다. 소송할 때는 출입 제한이 공익이고, 예산을 편성할 때는 통행 공간을 만드는 것이 공익이라는 식이다. 그때그때 필요한 논리를 골라 쓰는 행정에 원칙이라는 말이 가당키나 한가.

시의회가 예산 9000만원을 전액 삭감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이번 결정은 사업의 타당성을 인정하지 않은 최소한의 제동이다. 하지만 예산이 잘렸다고 모든 의혹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 사업 추진의 배후와 경위를 철저히 따져야 한다. 20여년간 이어진 일부 상가 관계자들의 요구가 어떤 경로로 시 정책에 반영됐는지, 6·3 지방선거 이후 사업이 본격화됐다는 주장이 사실인지, 특정 인사나 이해관계자의 청탁·압력이 있었는지, 담당 부서는 대법원 판결과 도시계획시설의 목적을 제대로 검토했는지 밝혀야 한다.

양산시는 예산 삭감을 핑계로 사업을 슬그머니 거둬들이고 책임까지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 시민에게 사과하고 사업 결정 과정과 관련 회의·보고 자료, 이해관계자 면담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감사부서와 시의회도 예산만 삭감하고 손을 놓을 것이 아니라 특혜성 여부와 예산 편성 과정을 끝까지 조사해야 한다.

행정은 힘 있는 민원인의 오랜 요구를 혈세로 해결해 주는 심부름센터가 아니다. 대법원 확정판결조차 행정 편의와 정치적 이해에 따라 휴지 조각처럼 취급된다면 법치와 행정 신뢰는 설 자리가 없다.

이번에 시의회가 막아선 것은 9000만원짜리 산책로 하나가 아니다. 양산시가 시민의 세금으로 법원의 판단과 스스로 세운 원칙을 허물고 특정 상가 앞에 '특혜의 길'을 내려던 시도다.

양산시는 이제 답해야 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누구의 지시로, 왜 이 길을 만들려 했는가.
이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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