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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을 비춘 달빛…100세 어르신에게 듣는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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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항쟁기 순사도 명절엔 안 찾아"
"한국 전쟁 피란 중에도 제사 지내"
"이웃집 제사상 도와 얻어 먹던 음식"
"사돈에 팔촌까지 마을 단위에서 지내"
가을이 한창인 때의 좋은 날(中秋佳節). 추석을 맞아 노랗고 둥근 달은 변함없이 하늘에 걸리지만 그 아래 풍경은 달라졌다.

예전 추석은 집집마다 대문이 열려 있던 날이었다. 마당에선 아이들이 강강술래를 돌고 부엌에선 송편 찌는 김이 피어올랐다. 가난해도 웃음은 풍성했고 이웃과 친척이 어울려 사람 냄새가 가득했다.

그러나 지금은 여행 가방부터 챙기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한국교통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국민 40.9%가 이번 추석 연휴 기간 여행을 계획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제사상에 올라갈 송편과 전을 마트에서 사는 사람도 많아졌다.

아시아투데이는 한 세기를 살아온 어르신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기억 속에서 옛 추석을 끄집어 냈다. 김예순 어르신(101)은 대일항쟁기 두려움이 멎던 하루로 기억했다. 최정례 어르신(102)은 한국전쟁 피란 속에서 어떻게든 지켜내려던 전통을 얘기했다. 최이순 어르신(101)과 김기순 어르신(98)은 지독한 가난의 배고픔을 잊게 해주던 한 끼를 떠올렸다.

어르신들은 한결같이 "가족과 정(情)이 가장 소중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추석만을 기다렸다고 했다. 함께 모여 밥을 나눠 먹는 그 순간이 무엇보다 귀했기 때문이다. 말을 맺은 어르신들의 얼굴엔 미소와 함께 쓸쓸함이 번졌다. 풍요로운 지금이 고맙지만 예전 '사람 냄새 짙은' 명절이 그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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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순 어르신(101). 일제 시대 당시 추석을 회고하고 있다. /김태훈 기자
"숨지 않아도 되는 하루"

김예순 어르신(101)은 추석을 이렇게 기억했다. 대일항쟁기 순사가 늘 칼을 허리춤에 차고 마을을 순찰할 때면 아이들은 볏짚 더미에 몸을 숨기곤 했다. 불시 검문에 걸리면 매질을 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에 두 번, 추석과 설날만큼은 순사가 마을에 찾아오지 않았다. 김 어르신은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추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김 어르신은 전라남도 곡성이 고향이지만 어린 나이에 만주로 이사했다. 친척들은 고향에 남아있던 터라 그곳에선 동네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명절을 보냈다. 널뛰기와 '다깨비질'이라고 부르던 강강술래를 하며 놀았다. 김 어르신은 "매일 같이 두려움에 떨며 살다 근심 걱정 없는 하루를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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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최정례 어르신(102)·김기순 어르신(98). 한국 전쟁 시절 추석 분위기를 설명하고 있다. /김홍찬 기자
"전쟁 중에도 마련해 먹었던 명절 음식"

최정례 어르신(102)의 추석은 전쟁의 기억과 겹쳐 있다. 한국전쟁으로 집을 떠나 피란살이를 하면서도 명절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때마다 먹을 게 턱없이 부족했지만 무언가를 마련하려 애썼다.

최 어르신은 "산에 올라 솔잎을 주워 와 송편을 쪘다. 풋콩을 따서 시루떡에 올려 먹기도 했다. 곡식은 덜 여물었지만 추석만큼은 풍성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다"며 "먹을 건 없어도 같이 있다는 게 중요했다. 굶주림이 일상이었으니 추석은 사람 사는 기운을 되찾는 날이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배고픔을 잊게 해준 이웃의 정"

김기순 어르신(98)의 어린 시절 추석은 가난의 그림자 속에 있었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제사상을 차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이웃집을 찾았다. 제사일을 돕고 얻어먹는 음식이 김 어르신에겐 그 해 가장 귀한 맛이었다.

김 어르신은 그때 이웃의 정을 떠올렸다. 김 어르신은 "추석이 기다려진 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서였다. 당시의 모습이 사라져가는 지금이 안타깝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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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순 어르신(101). 과거 사돈·팔촌 단위의 추석을 그리워 하고 있다. /김태훈 기자
"사돈에 팔촌까지 모였던 날"

최이순 어르신(101)의 고향은 전라남도 해남, 최씨 집성촌이었다. 당시 명절이면 사돈·팔촌까지 친척들이 몰려와 한 집에만 100명 가까운 사람이 북적였다. 대문 앞에서부터 아이들 웃음소리가 이어졌고 부엌에선 연기가 하루 종일 피어올랐다. 한 상에 둘러앉은 사람을 헤아리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모여야 한 가족뿐이다. 최 어르신은 "이제는 고향에 가도 아내 산소에 성묘만 하고 돌아온다"며 "친척들까지 한데 모여 노래 부르던 과거가 그립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김홍찬 기자
최민준 기자
유혜지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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