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연체율 늘자 가산금리 유지
은행, 우량기업 옥석가리기 고심
"위험 부담 감내할 정부 지원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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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과 리스크 관리 사이에서 은행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정부의 생산적·포용 금융 기조에 발맞춰 중소기업대출을 늘려야 하는 가운데, 주주환원을 위한 자본비율과 건전성 관리에도 중점을 둬야 한다. 하지만 경기 회복이 지연되면서 상환 여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들이 여전히 늘고 있는 추세다.
은행권은 신용평가모형을 손질하고, 전담 애자일(Agile) 조직을 신설하는 등 중소기업 '옥석 가리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우량 중소기업을 사전에 발굴할 수 있도록 선구안을 마련, 생산적 금융 확대와 건전성 리스크 최소화를 동시에 노리겠다는 전략이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671조877억원으로 전월(668조9622억원) 대비 2조1255억원 증가했다. 지난 6월 이후 3개월 연속 증가세다. 6·27 가계대출 규제 강화로 하반기 기업대출이 주요 수익원으로 떠오른 데다, 정부의 신성장·혁신 벤처기업 지원 주문이 더해지며 중소기업대출 취급이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중소기업대출 금리가 낮아진 점도 한 몫했다. 5대 은행의 중소기업대출 평균 금리(보증서대출 기준)는 올해 초 4.90%에서 지난 8월 3.95%로 0.95%포인트 떨어졌다. 중소기업대출 금리가 3%대로 내려간 것은 코로나 팬데믹 직후인 2022년 말 이후 처음이다.
하지만 세부적인 지표를 보면 기준금리 인하 영향이 컸다. 같은 기간 이들 은행의 중기대출 기준금리는 3.27%에서 2.55%로 0.72%포인트 하락한 반면, 가산금리는 3.09%에서 2.97%로 0.12%포인트 내리는 데 그쳤다. 연중 가산금리가 가장 낮았던 3월(2.91%)과 비교하면 오히려 소폭 반등한 셈이다.
은행들은 가산금리를 쉽게 낮추기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한다. 중소기업 연체율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기준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0.82%로, 전년 동월 대비 0.15%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대기업대출(0.14%)이나 가계대출(0.43%)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금리 인하기에 가산금리까지 큰 폭으로 내릴 경우 건전성 지표는 물론, 주주환원의 기준이 되는 자본비율도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 은행권의 설명이다.
대신 은행권은 우량 기업 선별을 통한 자금 공급에 나서고 있다. 정부의 생산적 금융 기조에는 동참하되, 부실 위험이 낮은 중소·벤처기업 중심으로 자금을 공급해 리스크를 최소화하겠다는 판단이다. KB국민은행과 NH농협은행은 최근 기업신용평가모형 고도화 사업을 추진하며 판별력과 안정성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하고 있고, 신한은행은 초혁신경제 지원 전담 조직을 신설해 업종별 유망 기업 발굴 리서치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향후 5년간 73조원을 생산적 금융에 투입하겠다고 밝힌 우리금융그룹도 은행의 산업 분석 기능을 고도화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생산적 금융 전환 흐름 속 은행들이 리스크를 줄이는 노력을 병행하는 한편, 정부 차원의 지원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민환 인하대 경영대학원장은 "생산적 금융을 무작정 확대하라고 요구해 은행이 리스크를 떠안게 하는 것보다, 건전성 규제 완화 등 인센티브를 부여해 위험 감내 여력을 키워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