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단기 증원 땐 1·2심 약화 초래
상고 증가 악순환… 순차적 증원 필요
내란재판부 설치·법원행정처 폐지 비판
독립성 침해… 정치 개입 통로 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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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주최하는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가 2일 차를 맞았다. 이날 공청회에선 대법관 증원과 상고제도 개편에 대한 토론이 이뤄졌다.
◇대법원 비대화-사실심 악화 '악순환'
참석자들은 재판지연의 해소를 위해선 여당이 주장하는 '대법관 증원'보다는 '사실심(1·2심) 강화'가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더구나 하급심 강화가 수반되지 않은 상고심 비대화는 오히려 1·2심의 약화를 초래해 항소·상고가 증가하는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판사 출신으로 사법연수원 교수를 지낸 오용규 변호사는 "상고제도 개혁의 핵심 전제는 사실심, 특히 1심의 강화"라며 "상고심의 문제는 단순히 대법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심인 1·2심의 충실화, 3심의 법률심화라는 전체 심급 구조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 변호사는 "심급 제도는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1심이 충실하지 못하면 항소가 증가하고, 항소심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상고가 증가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며 "상고제도 개선 논의는 사실심 강화가 전제돼야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고, 대법원 구조 개편도 사실심 강화에 역행하지 않아야 한다. 1심이 부실한 상태에서 상고를 제한하면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해 엄청난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현수 광주지법 부장판사도 "(대법관을 기존 14명에서 26명으로 증원하는)입법안대로 12명 대법관을 단기간에 임명하게 되면 대법원 비대화와 함께 사실심 약화를 초래하고 되고 이로 인해 상고사건이 더욱 증가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증원하더라도 사실심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로 소수의 인원은 순차적으로 증원하되 인원 증가에 따른 효과를 면밀히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도형 수원지법 안산지원 부장판사 역시 "대법관 수를 증원한다면 1·2심을 담당하는 경력과 경험이 풍부한 법관 수가 감소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대해서도 "상호 간의 토론과 설득의 밀도가 낮아질 가능성이 커져 충분한 심리와 숙의가 곤란해질 우려가 있다"고 우려했다.
◇내란재판부 허용 땐 '사법부, 정치적 하청기관 전락'
여당이 추진 중인 내란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조차 '사법부가 정치의 하청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정지웅 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변호사)은 전날 "이번에 내란전담재판부를 허용한다면 다음 정권에서는 가령 '선거사범 전담부'를, 그 다음에는 '대형재난사건 전담부'를 요구할 수 있다. 이런 전례가 생기면 사법부는 정치권 요구에 따라 재판부를 만드는 '정치적 하청기관'으로 전락할 것"이라며 "사법권 독립을 실현하는 구체적 장치가 바로 '사건의 무작위 배당'이다. 정치적 사건일수록 더욱 엄격하게 이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에서 내란·외환 피의자에 대한 구속기간 연장 조항을 담은 것에도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형사법학회장을 지낸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수한 경우에 한해 연장을 허용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필연적으로 다른 공안 사건이나 중대 범죄로 적용 범위가 확대될 것이며 결국 구속 기간의 장기화로 귀결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사법 정치화, 법치주의 퇴행으로
법원행정처 폐지와 사법행정위원회 개설 등의 개혁안에 대해서도 재판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사법부 인사·예산권을 외부에 넘기면 정치 개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제도 개편 이면에 숨은 정치적 목적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사법의 정치화는 결국 법치주의의 퇴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정 변호사는 "법원행정처 폐지와 사법행정위원회 개설은 표면적으로는 민주적 통제와 개방이라는 명분이 있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사법권 장악의 위험성을 직시해야 한다"며 "인사권 기구에 정치권 추천 인사나 특정 단체 출신들이 들어가면 판사들은 법과 양심이 아닌 인사권을 쥔 인사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여론에 억압 당하고, 특정 세력 입맛에 맞는 판결을 내리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치가 사법행정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재판에 개입하는 통로를 열어주는 것"이라며 "재판 독립성을 침해하는 인사·예산 권한까지 외부에 넘기는건 신중해야 한다. 사법독립은 판사의 특권이 아니라 국민의 공정한 재판 받을 권리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공두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제도가 지나치게 급격하게 변하면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발생한다. 사법의 정치화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퇴행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법률, 재판을 일종의 무기로 사용하면 우리 사회의 제도적 정당성 수준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