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달리 청해진해운은 세월호에 화물 과적하고 평형수 줄여
정씨는 “그때 내 차에 탔던 여학생들은 친구들과 함께 하는 수학여행에 무척 들떠 있었다”면서 “새 옷에 화장으로 한껏 멋을 낸 모습과 별 것 아닌 일에도 까르르 웃고 수다 떨기 좋아하던 학생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한참이 지나서야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는데 그곳에 내가 태웠던 여학생 3명 중 2명의 영정과 위패를 보고 참 애석했다”고 말했다.
사고 발생 하루 전인 지난달 15일. 제주도 여행에 대한 설렘을 가득 안고 세월호에 탑승했던 사고 희생자들의 마지막과 차량 및 화물 과적, 기준치에 한참 못 미치는 평형수 등으로 과욕을 부린 세월호의 마지막이 대비되면서 주변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이번 사고로 단원고에 재학 중인 오빠를 잃은 A양은 “사고 전날 수학여행을 간다고 자랑하던 오빠와 싸웠다”며 “평소에 오빠라고 안 불러도 오빠가 이해해줬는데 지금은 그랬던 오빠가 없어 집안이 조용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양은 “다음 생에서도 오빠와 함께 남매로 태어나고 싶다”는 애틋한 바람을 전했다.
이날 오후 6시30분 출항 예정이던 세월호가 짙은 안개로 연발되면서 몇몇 단원고 학생들은 배편 수학여행에 두려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모군(17)의 아버지는 “출항 직전 아들이 인천항의 흐린 날씨와 짙은 안개에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했고, 김모양(17)의 어머니 역시 “오후 7시 다돼서 딸에게 전화가 왔는데 배가 안 뜰 것 같다고 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세월호 탑승객들이 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가슴 부풀었을 그날 세월호의 선사 청해진해운은 규정보다 많은 차량과 화물을 세월호에 실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에 따르면 세월호는 사고 전날인 15일 복원성 유지를 위해 987톤의 화물을 실어야 했지만 이보다 3배 많은 3608톤의 화물(자동차 108대 포함)을 싣고 운항한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청해진해운은 이를 허술하게 고박하며 평형수 역시 한국선급 기준량 2023톤의 4분의 1 수준인 580톤만 채우면서 세월호 침몰에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이다.
또한 선박직 승무원 15명 중 절반 가량이 청해진해운에 입사한 지 6개월이 안 된데다 이중 1등 항해사 1명이 사고 발생 하루 전인 지난달 15일 입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애초에 세월호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터져 나온다.
사고 발생 22일째. 돌아가려야 돌아갈 수 없는 사고 하루 전 그날의 이야기는 각자의 입장에 따라 많이 달랐다.









